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크노스 저팬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테크노스 저팬은 1981년 12월, 타키 쿠니오(瀧邦夫)를 중심으로 [[데이터 이스트]]의 사원이었던 3명이 독립해 설립했다. 1982년에는 '''밍키 몽키'''라는 첫 아케이드 게임을 내놓았다. 1984년, '''세계 최초의 아케이드 [[대전액션게임]]'''으로 기록되는 [[가라테(게임)|가라데 챔프]]를 개발하면서 두각을 드러낸 테크노스 저팬은[* 가라데 챔프는 일반적으로는 데이터 이스트의 게임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, 실제 제작사는 테크노스 저팬이다. 1985년까지만 해도 데이터 이스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유통을 데이터 이스트에서 했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지게 되었다.] 1985년, 아케이드 레슬링 게임의 원조인 [[익사이팅 아워]]를, 1986년에는 세계 최초의 [[벨트스크롤 액션 게임]] [[열혈경파 쿠니오군]]을 선보이면서 액션 게임계의 혁신을 일으키고 다음해인 1987년에는 [[벨트스크롤 액션 게임]]을 대중화시킨 [[더블 드래곤]]까지 발매하여 [[액션게임]]의 선구자라는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.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테크노스 저팬은 80년대 후반부터 [[패미컴]]으로 많은 [[열혈 시리즈]]를 만들기 시작했고 대성공을 거둔다. 그러나 이런 성공과는 별개로 아케이드 게임 제작팀과 패미컴 게임 제작팀 간의 사이는 굉장히 나빴다고 한다. 당시 테크노스 저팬의 제작 팀은 크게 아케이드 게임의 제작을 담당하는 팀[* 열혈 시리즈의 초대 작품인 [[열혈경파 쿠니오군]], [[열혈고교 돗지볼부]], [[더블 드래곤]], [[더블 드래곤 2]]를 제작했다.]과 패미컴 게임의 제작을 담당하는 팀[* 열혈경파와 돗지볼부를 제외한 열혈 시리즈를 제작하고 더블 드래곤 1, 2, 3를 패미컴으로 이식했으며, 더블 드래곤 4부터는 제작을 맡았다.]으로 나뉘어 있었는데, 패미컴용 열혈 시리즈의 판매량이 기존에 테크노스 저팬에서 발매했던 아케이드 게임들의 판매량을 넘어서면서 테크노스 저팬의 경영진이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아케이드 팀의 개발 예산을 패미컴 제작팀에 몰아주었기 때문이다.[* 패미컴용 게임 개발 예산이 여타 패미컴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 팀에 비해 높게 책정되어 있었던 덕분에 테크노스 저팬은 (패미컴을 개발한 [[닌텐도]]조차 선보이지 못한) 패미컴 하드웨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뛰어난 조작감을 가진 게임들을 여럿 발매할 수 있었다. 참고로 패미컴은 2버튼 액션이고 테크노스 저팬이 만든 게임들의 대부분은 3버튼 액션이었는데, 기본적으로 A, B를 각각 펀치, 킥에 대응시켰고, A+B를 점프에 대응시켰다. 그 외에도 더블 드래곤이나 열혈 시리즈를 보면 정말 다양한 수준의 조작이 나온다.] 한편, 테크노스 저팬의 미국 자사에서는 북미 유저들의 취향에 맞춘다는 이유로 아케이드 원판을 멋대로 뜯어 고쳐서 발매하는 만행을 저질렀고[* 열혈 시리즈가 큰 피해를 입었다. 아케이드만 해도 열혈경파 쿠니오군은 [[레니게이드]]로, [[열혈고교 돗지볼부]]는 주인공 팀의 국적 변경을 당했다.] 결국 경영진들과의 불화에 지쳐서 1991년 [[WWF 레슬페스트]] 개발을 완료한 뒤 아케이드 게임 제작팀에 속해있던 대다수가 퇴사히며 아케이드 부서가 해체되었다.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가 되어 [[패미컴]]으로 발매한 게임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른 유행을 쫓아가지 못해 판매량이 점차 감소하게 된다.[* 참고로 90년대는 1991년 [[캡콤]]에서 발매한 [[스트리트 파이터 2]]의 초대박 이후 [[대전 액션 게임]] 붐이 일었던 시기였다. 그리고 테크노스 저팬에게는 대전 액션을 만들 수 있는 소재인 [[열혈 시리즈]]와 [[더블 드래곤 시리즈]]가 있었다. 그러나 테크노스 저팬은 그 시절의 게임 유행을 외면하고 열혈 시리즈를 모태로 한 스포츠 게임만을 고집했다.(이 행보의 가장 극단적인 예시가 바로 [[쿠니오군의 열혈투구전설]]이다.) 결국 회사 말기에 더블 드래곤 시리즈로 [[대전 액션 게임]]을 [[더블 드래곤(네오지오)|내긴 했는데]]... 사실상 더블 드래곤 시리즈와는 별개인 오리지널 디자인이었다.] 이후 [[슈퍼패미컴]]으로 기종을 갈아타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. [[파일:DSCN4647.jpg|width=300]] [[파일:DSCN4646_02.jpg|width=300]] 테크노스 나카노 빌딩 이 와중에 회사는 [[도쿄도]] [[나카노구]]에 '''테크노스 나카노 빌딩을 건설해''' 1992년에 사무실을 옮겼고, 같은 해에 '''[[포뮬러 3]] 레이싱 팀을 운영하는 등''' 무리한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. 특히, 테크노스 나카노 빌딩의 막대한 건설 비용은 파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.[* 사실 이 당시의 일본 경제는 거품 경제가 꺼져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, 부동산 개발에 투자한 기업이 매우 많이 쓰러지기 시작했다. 놀이공원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운영한 [[SNK]]가 '''일본 게임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'''을 선고하고 쓰러진 것이 예시. 거품 경제덕에 빌딩을 착공할 수 있었으나 거품 경제가 꺼진 후에는 감당 못할 짐이 되었다.] 결국, 테크노스 저팬은 1996년에 파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